〈전기가오리 월간 텍스트〉를 시작합니다. 이번에 보내드리는 2026년 1–2월 텍스트부터 매달 여러 편의 글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제작합니다. 판형은 통일하되 디자인은 매달 다르게 구성하고요, 이번 두 권의 디자인은 이기준 씨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전기가오리
@philoelectroray.bsky.social
사회정치적인 주제의 철학적 측면에 주목하고, 반엘리트주의를 주창하며, 철학을 둘러싼 격차 문제의 해소에 기여하는 ‘전기가오리‘입니다. philo-electro-ray.org
곧 보내드릴 텍스트 가운데 하나는 브뤼노 라투르, 「잃어버린 질량은 어디에 있는가?: 몇 가지 일상적인 인공물에 관한 사회학」입니다. 이번에 보내드릴 기술철학 논문 두 편 중 하나입니다.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요제피네, 여가수이거나 아니면 생쥐족이거나」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예술가와 그가 속한 공동체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를 해설한 글입니다. 내년 2월부터 다시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전기가오리의 작품 해설은 계속 이어집니다.
〈천 논문도 한 문장부터〉를 개편합니다. 이번 개편에는 네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매달 두 편의 원고를 발행합니다.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에서 각각 한 문장씩 선정합니다. 상이한 두 철학 전통을 이해하는 데 기여합니다. 아무튼 둘 다 알면 좋으니까요. 둘째, 철학 공부의 근간이 될 만한 문장을 선정합니다. 특정 논문이나 저작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철학 텍스트를 읽을 때에도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근본’ 문장에 집중합니다.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만리장성의 축조 때」와 「법 앞에서」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문장을 다듬었고, 과한 해석이 하나 있어 내용을 살짝 완화했습니다.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조를 다듬었습니다. 전기가오리의 작품 읽기 시리즈는 보르헤스와 카프카에 이어 맨스필드와 코르타사르의 작품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철학의 문제들〉 「낯선 사람의 곤경을 외면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 부담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레비나스의 비대칭 윤리를 중심으로 데리다와 리쾨르의 서로 다른 입장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내년 2월부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언어행위와 말할 수 없는 행위」와 「언어행위의 자유? 랭턴에게 보내는 응답」에 대한 설명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이로써 2026년 3월분 텍스트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3월분은 3~6월분 텍스트를 묶어 발송할 때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내가 내린 결정이 정말 나의 결정인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이번 개고에서는 코기토의 논변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주체의 형성과 결정론을 구별했으며, 버틀러의 수행성과 행위자성에 관한 설명을 수정했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일은 나쁘다’는 사실을 진술하는가, 아니면 태도를 표명하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이번 개고에서는 도덕 판단이 감정과 태도를 표현한다는 설명을 다듬고, 도덕상의 의견 차이에 관한 설명을 바로잡았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일이 나쁘다는 점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이번 개고에서는 도덕 인지주의와 도덕 실재론을 구별하고, 도덕적 믿음의 정당화와 인지주의에 제기되는 반론을 더 정확히 설명했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일이 나쁘다는 점을 알 수 있는가?」의 개고를 마쳤습니다. 도덕 인지주의와 비인지주의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도덕적 추론과 불일치에 관한 설명을 바로잡았습니다. 인용과 참고문헌도 정비했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무엇이 사과를 사과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작업을 마쳤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라는 말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2026년 3월 텍스트로 보내드립니다.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어느 단식예술가」에 대한 해설을 마쳤습니다. 결핍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그 삶을 평가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어요. 2026년 3월 텍스트로 보내드립니다.
〈철학의 문제들〉 「질문은 누구에게 무엇을 떠넘기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차별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해명의 부담을 돌립니다. 이번 개고에서는 문장 수준의 수정만 있었습니다.
〈전기가오리로 서양철학사 읽기〉를 두 편 썼습니다. 각각 「플로티노스의 영혼론」과 「프레게의 반심리주의」이고요. 2026년 3월 텍스트부터는 고대편과 현대편에서 한 편씩, 매달 두 편의 철학사 원고를 보내드립니다.
대니얼 제이컵슨, 「언어행위의 자유? — 랭턴에게 보내는 응답」에 대한 작업을 마쳤습니다. 포르노그래피의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여성의 발화수반행위를 불능화한다는 랭턴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는 논문입니다.
〈철학의 문제들〉 「리트윗한 사람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리트윗은 동의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말을 퍼뜨린 책임도 없을까요? 발화의 의미와 부인가능성, 알고리즘의 증폭을 통해 온라인에서의 책임을 묻습니다.
레이 랭턴, 「언어행위와 말할 수 없는 행위」의 번역과 편집을 마쳤습니다.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종속시키고 침묵시킨다는 두 주장을 전개하고 옹호하는 논문입니다. 2026년 3월 텍스트로 보내드립니다.
〈철학의 문제들〉 「차별적인 표현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으로 바꾸면 차별적 태도도 바뀌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대화 함축에 관한 설명을 바로잡고, 순화어의 의미 변화와 표현 변경의 실제 효과를 다룬 연구를 보강했습니다.
〈철학의 문제들〉 「내 친구는 왜 갑자기 서울말투를 쓰는 걸까?」의 개고를 마쳤습니다. 주텍스트를 부르디외의 『언어와 상징권력』으로 바꾸면서 원고의 상당 부분을 다시 썼습니다. 후원자께서는 내년 1월에 신청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중장년 여성 노동자를 “이모~”라고 불러도 되는가?」에 대한 개고를 마쳤습니다. 크게 뜯어고친 곳은 없고요, 몇몇 개념의 범위를 바로잡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쓴 문장을 덜어냈습니다. 호칭 하나가 사람의 지위와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강화하는지를 묻는 글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해 발행하는 현장 심층 콘텐츠 시리즈 『켜켜진』 1호에 짧은 글을 하나 실었습니다. 〈청년, 오래된 미래의 낙관적 이정표〉라는 제호에 맞추어 「조건은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어요. inmun360.culture.go.kr/webzine/2026...
「“장애인인데도 정말 대단하시네요!”는 칭찬인가, 모욕인가?」도 수정 작업을 마쳤습니다. '미세공격'을 '미시공격'으로 바꿨고, 그에 따라 내용 일부를 업데이트했습니다.
전면적인 아카이빙 작업을 앞두고 옛 원고를 재검토하는 중입니다. 〈철학의 문제들〉 첫 원고였던 「‘상어는 사람을 공격한다’는 참일까, 거짓일까?」를 꽤 많이 수정했어요. 새로 구매해야 하냐고요? 아닙니다, 후원자께서는 내년부터 매달 두 편 정도의 기존 원고를 무료로 읽으실 수 있게 됩니다.
SNS에서 도덕적 분노를 표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잘못에 분노하기보다, 분노하는 일 자체에서 만족을 얻기도 합니다. 「도덕적 분노 포르노」에서 한 문장을 뽑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천 논문도 한 문장부터〉 65회 원고로 만들어 보내드립니다.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종속시키고 또 침묵시킨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주장을 언어행위 개념을 중심으로 구체화한 레이 랭턴의 「언어행위와 말할 수 없는 행위」 번역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 응답하는 데니얼 제이콥슨의 「언어행위의 자유라고? 랭턴에게 보내는 응답」도 함께 작업합니다.
두 편의 「도덕상의 운」에 대한 설명 원고도 다 썼습니다. 이것으로 2026년 1–2월 텍스트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공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앞으로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