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인 치이카와 극장판을 나도 봤고, 자매백합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치이카와 극장판을 추천하는 건 사기죄에 해당하는 행위일까? 하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여명
@redcoffin.bsky.social
마마마 동방 귀멸 명방 립구 등. 백합 위주. 마음대로 스포하고 블로그에 백업함. -----------------------------------------------------------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hacnail_16 트위터 : https://x.com/redcoffin_14 포타 : http://overdose-10.postype.com 마노사바 계정 : @rheart39.bsky.social
[명탐정 프리큐어 SS]같은 공백의 너머: Over Dose posty.pe/pjli4mga 루루쿠레. 사실 평소의 캐릭터 해석과는 조금 틀린 이야기인데 쓰다 보니 그렇게. 가능하다면 런던 시절 이야기도 써보고 싶지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웬만한 이야기는 이미 죄다 픽시브에 있어서 별로 의미는 없을 듯 하다.
[명탐정 프리큐어 SS]같은 공백의 너머: Over Dose
Q. 흰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한 명은 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만 천을 걷어서는 안 되고, 다른 한 명은 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번민한다면, 여기서 더 슬픈 사람은 누구인가? / 최근 들어, 호와 쿠레아는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근무 도중 손님을 기다리며 간간히 짧은 휴식을 취할 때나, 혹은 ...
posty.pe
다음 주에 루루쿠레가 학교도 가겠다 만약 상대가 저 외의 다른 아이와 친해 보이면 질투할지 어떨지 생각해봤는데, 루루카는 질투한다기보단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슬프고 불안해하지만(그리고 그걸 티내지 않으려 하지만) 쿠레아는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루루카가 매주마다 박스로 러브레터를 받아도 곤란해하는 루루카를 보며 귀여운 듯이 웃고 끝낼 인상이 있다. 그도 그럴 게 루루카가 거기까지 자신의 사랑을 행동으로 강렬하게 증명한 이상, 향후 쿠레아가 루루카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자신임을 의심하거나 불안해하는 일은 없을 것.
자칫 놓치기 쉽지만 사실 마도학 사건 대책부는 촬영이라는 설정의 극중극인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사라고 인정하기엔 너무 막 나가는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화), 그래도 버틴이 그 잘 빠진 얼굴과 허리선을 갖고 의외로 서툰 춤꾼인 건 맞는 것 같아 정말 귀엽군...소네트도 아마 촬영 대로 똑같이 춤이 서툴 테니 초보 댄서 둘이서 함께 춤을 추게 된 바람에 호흡을 맞추느라 진땀 빼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
리아논의 황무지 대사 중 하나가 "Are you aright?" 라니, 버틴이 평소엔 쿨하고 표정 기복도 적은 주제에 그녀를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무심코 쓸쓸함과 후회로 물든 얼굴을 하고 마는 게 느껴져서 정말 좋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런던 시절의 루루쿠레에게 꿈을 꾸고 있는데,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예쁜 아이와 친해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또 이 반짝이는 아이 옆에 서기엔 자기가 한없이 부족한 것 같아 남몰래 고민하던 쿠레아(13세)를 생각하면 너무 귀여워서...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루루카도 신기하리만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톱 오브 릴리가 가득 핀 화단에서 "우리들 똑같았네." 라고 마주 보며 서로 수줍게 웃는 이야기 희망.
이 부분과 이어지는 게 바로 1.5의 스파토데아와 곧 다가올 3.9의 헤돈을 포함하는 '윤회자' 설정이며, 그 점에서 재단이 주입 실험이라는 일견 죽은 자를 되살려내는 것마냥 터무니없어 보이는 행동에 계속 매달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윤회자에게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결국 전생과 현생의 영혼이 동일하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전생의 기억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고 보통은 그걸 떠올리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데, 그럼 리버스된 인간에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인공 윤회자' 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론적으론 가능한 거다.
저 고차원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던 혼이 물질세계로 추락해 육체에 갇히지만(유출) 영적 관찰과 수행을 통하여 자신의 근원인 일자를 향해 상승, 합일(귀환)하는 게 신플라톤주의의 핵심이며, 그 점에서 빗방울이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는 폭풍우의 특성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진 영혼이 다시 승천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폭풍우로 리버스된 인물이 전생과 비슷한 얼굴인 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형상의 기본이 되는 영혼은 결국 어디까지나 동일하니까.
4.0 신캐 중 하나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이격 릴리아였고, 그녀의 중국명이 '붉은 쇠뇌 화살红弩箭' 이란 점에서 이름 그대로 따라가는 디자인이라 만족. 그나저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 전사한 친구 이야기가 나오던데, 혹시 그 친구 23년 9월 17일의 출석 기록 : 红弩箭在日常训练中取得了第一名,并和一名同学将某个挑衅过她的家伙揍了一顿。에서 릴리아를 도발했던 녀석을 합심해서 두들겨 패줬다는 동기와 동일 인물?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센티넬은 이미 마샤를 친척들에게 소개했는데 마샤는 언제 센티넬을 친정 엄마에게 소개할까. 다른 기사단원이라면 몰라도 마샤만은 단명을 했으면 했지 결혼을 한다는 미래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야무진 아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골랐겠지, 사랑하는 이가 생겼으니 이젠 조금이나마 덜 자신을 깎아내겠지, 싶어 안도하는 것도 잠시 전쟁터에서 저를 죽일 뻔 했던 사람이라는 소갯말에 역시 전쟁의 충격으로 마샤의 정신에 어딘가 이상이 온 게 아닌지 급격히 걱정 되기 시작하는 아델하이트 단장.
립구 4버전 PV에서 '1999년의 마지막 밤' 이란 키워드가 나와서 말이다만, 복낙원에서 아니무스의 발언을 보건대 1999년의 마지막 밤에 발생했던 첫 폭풍우가 복낙원에서처럼 홍수가 되는 꼴을 면한 건 당시 이고르와 작전을 같이 하던 우르드 덕택이었던 것 같은데(버틴처럼 폭풍우 면역자였을 그녀가 권능을 잃은 것도 그 때 힘을 너무 써서일 가능성) 재단은 리버스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데려다 인체실험을 했을 뿐 아니라 그 딸에게도 가혹하게 대하는 게 정말 은혜도 모르는 개자식들이다 싶어.
센티마샤가 자기네 국적과 그에 수반해 흔히 떠오르는 나라별 스테레오 타입을 마치 서로 교환이라도 한 것 같은 게 참 귀여운데...독일인의 특징으로 꼽히는 융통성 없고 농담이라곤 안 키우는 성격은 프랑스 출신인 센티넬이고 오히려 독일인인 마샤가 남부 프랑스의 온화한 햇살을 가득 받고 자란 것마냥 사근사근 부드러운 성격이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분명 모두 반대라고 생각할 거야.
새로 공개된 큐어 아르카나의 취미: 여친 직장에서 여친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기 ...아니 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좋아하는 쿠레아도 지켜보고 하는 김에 32화에서처럼 탐정답게 인간관찰도 겸할 수 있는 의외로 일석삼조의 실용적 취미라고는 생각하지만, 아침부터 쿠레아와 함께 출근해서 테라스에 죽치고 앉아 내내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저녁에 쿠레아와 함께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백수라고 비웃고 싶지도 않고 그냥 주인님 기다리는 강아지라 새삼 쿠레아와 평생 남남으로 살겠다는 맹세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느껴지네.
쿠레아-루루카의 과거에서 쿠레아가 루루카에게 첫눈에 반한 듯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보건대 아마 기억을 잃은 후에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로 들어오는 루루카를 다시금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주위로만 세계의 색채가 한 단계 선명해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고 매일매일 '그 예쁜 아이 오늘도 와줬어', '그러고보니 그 예쁜 아이 오늘은 안 왔네' 생각했을 것 같아서...운명.
최근 명탐정 프리큐어의 루루쿠레가 마호프리에 비견될 정도의 백합을 보여주고 있어 시끌시끌한데, 이 둘이 홈즈-왓슨의 오마주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왠지 모르게 납득이 된다. 홈즈와 왓슨이면 어쩔 수 없지. 세간이 그 둘을 커플로 엮어온 역사가 벌써 몇십 년이니! 소중한 조수 왓슨이 세상을 멸망시킬 모리어티가 되리라는 생각에 절박해진 홈즈가 신조를 꺾고 스스로 범죄에 손을 더럽혀서라도(=자신이 모리어티가 되어서라도) 왓슨을 깨끗하고 행복한 채로 남겨두고 싶었던 이야기가 루루카-쿠레아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새삼 재미있다.
후험자에서 검은 양을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 이라 일컫는 구절이 있는데, 이 '검은 양Black sheep' 에 '이단아' 라는 뜻이 있고 작중에서 버틴과 스트레인저가 그렇게 불렸으며 아르카나가 이 둘을 제 무수한 광신도보다 예뻐하며 눈 여겨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검은 양이라 불린 적은 없지만 아르카나가 직접 스카우트한 소피아도 역시 아페이론의 이단아(다른 무리수도 아니고 루트 2)였으니, 이단자 취급받는 마도학자들의 어미로서 아르카나는 이단자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겠지. 극도로 불공평한 편애긴 하나...
'후험자의 마을' 은 한섭에선 꽤 괴상하게 번역됐지만 글섭에선 '후험적 진리truth a posteriori' 인데, 이 이벤트가 마도학적 비경을 이성으로 해석하려던 탐사단이 날마다 점점 미쳐가는 내용임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 칸트는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개념을 '선험적 지식a priori', 이성만으론 알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을 '후험적 지식a posteriori' 이라고 했는데, 여기선 고대의 심오를 몸으로 겪고 접하면서 발병한 탐사단의 광기, 이 숲에 전부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후험적 진리' 인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참 묘한 게 이후 13장에서 버틴-메렐의 관계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폭풍우에 휘말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버틴도 이반과 똑같은 처지라는 거지. 메렐과 리아논까지는 어떻게든 이성으로 눌러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머니가 '얼굴만 똑같은 남' 이 되어 나타나면 버틴은 어떤 기분일까? 자신의 각오를 유지할 수 있을까? 리버스된 인간에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며 크리오스가 협력을 요청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12장에선 메렐-갈리나 부인의 대화가 주로 복선으로 꼽히지만 버틴-이반의 대화도 당시 참 의미심장하다 싶었는데(지금 보면 각자 리버스되는 편&뒤쫓아가는 편의 조합이기까지), 그 점에서 13장은 그 때 보류되었던 버틴의 대답이 밝혀지는 편이기도 했군. 그리고 이는 개인적으로 13장에서 가장 고평가하는 부분이다. 꼭 닮은 남임을 알면서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쓸쓸한 심정, 립구 세계관의 특수성에 기인한 진귀한 경험을 작중의 버틴과 작외의 플레이어가 완전히 싱크로하여 메타적으로 체험한다. 누가 뭐래도 주년 이벤트에 어울린다.
중국 상하이에 존재하며 명나라 시대의 고급 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 판윈단)이 자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만들기 위해 20년에 걸쳐 건립한 개인 정원 '예원豫園' 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조사해봐도 실크나 중국 차 가게는 있어도 골동품 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없어서 조금 애매한 느낌. 내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건지, 아니면 립구의 예원에는 골동품 시장이 있는 건지.
립구 4.0의 제목 '문지기는 누구인가pa gur yu y porthaur?' 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웨일스어 필사본이자 아서 왕 전설의 초기 형태가 담겨 있는 '카마르텐 흑서' 에서 아서 왕 일행과 그들의 요새 진입을 막으려는 글레울위드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를 말한다. 리아논의 모티브가 웨일스 신화 마비노기온에 등장하는 새와 말의 여신 리아논이며 아다르 루흐 그윈 또한 웨일스 신화 속 맹금류라는 점에서 곧 립구에서도 아서 왕 전설이 중요하게 등장하겠거니 싶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다.
립구의 오솔길은, 뭐 애시당초 디스코 엘리시움의 독특한 나레이션ㅡ즉 알콜중독자 기억상실증 주인공의 무너진 내면에 존재하는 24가지 인격과의 심리적 대화 시스템을 고스란히 오마쥬하고 있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당연하지만, 곱씹는 맛이 나는 은유로 주인공 버틴을 포함해(이거 중요) 재단이건 재건이건 아르카나건 세상 모든 것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설명해주어 매번 읽는 즐거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메스머에 대해 현재 재단에서 아동노동보호법의 무게가 샌드위치 포장지보다 하찮다고 표현하는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스트레인저의 경우에서도 PV에서의 빨간 장갑을 보건대 그녀에게 굴광성 법칙을 박아넣어 스파이로 만든 모스맨의 정체는 크리오스다. 목소리가 똑같기 때문에 대부분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치챘겠지만...어쩐지 메렐을 꾀어다 실험체로 써먹으려는 솜씨가 꽤나 능숙하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이 양반 상습범인 모양. 굴광성 법칙도 그렇고 메렐에의 추적약 투여도 그렇고 '인격' 과 관련된 실험과 계속 엮이고 있는 것도 포인트다.
놀라운 건 12장에서 메렐에게 도주 방지 명목으로 주입되었던 '추적약' 이 사실 호박방에서 자행되었던 주입 실험의 시약이었다는 건데(애초에 추적약 자체가 주입 실험의 산물), 이 폐급 신병이 겁먹고 탈영해버린 덕에 약제를 주입할 좋은 구실이 생기긴 했지만 크리오스가 그녀를 초빙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규칙을 잘 지키는 어수룩한 어린애' 를 하나 낚아다 실험체로 써먹을 공산이었던 게 아닐지. 그러니까 메렐의 성적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실험체로 써먹고 버릴 작정이었으니까.
마도학 사건 대책부 7화, 마커스와 레굴루스는 소네트가 크리터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데 그 옆의 오랜 소꿉친구 겸 상사 겸 서방님은 역시 소네트라는 듯이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는 데서 일억 점 드려요.
스트레인저에게 실시된 세뇌 요법 '굴광성 법칙' 은 눈과 얼굴을 고정시켜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과 14일의 처치 기간을 보건대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인성 파탄 주인공 알렉스에게 '선량한' 가치관을 심기 위해 가해진 루드비코 요법이 모티브인데, 이 루드비코 요법이 특정 자극에 대한 지속적 노출로 후천적 조건 반사를 만드는 행동주의 실험 '파블로프의 개' 를 응용하고 있다는 데서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꺼림칙하다. 그러니까 성 파블로프 재단은, 사람을 훈련시켜 개로 만드는 집단인 거지(소네트의 우디모를 보며).
스트레인저의 일화에서 그녀와 모친 콘스탄틴의 복잡한 관계를 알고 나니 그래서 아니무스-프리마 사이에 있는 미묘한 증오, 존경과 애정을 기민하게 알아챘던 거구나 싶어 재미있어졌다. 콘스탄틴은 스트레인저를 장기말로 썼고 그건 고통을 강요하는 길이었다. 물론 애착과 신뢰도 있었지만 결코 완전히 믿지는 않았고 그 애착도 인간적 감정의 발로임과 동시에 부하의 충성을 얻기 위한 실용적 방편 중 하나였겠지. 스트레인저도 콘스탄틴의 속셈을 알면서 딸로서 사랑하지만 계속 그녀 밑에 있으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떠나 독립한다.
누가 엄마에 미친 게임사 아니랄까봐 이 짧은 구간에도 아니무스-프리마 모녀 사이의 애증을 구겨넣는 거 진짜 일종의 집착에 가깝네 아니무스는 (아마 자기 친딸도 포함해서) 다른 재건 인물들을 죄다 저보다 못하다며 한심하게 여겼는데 프리마도 분명 그런 모친을 내심 깔보고 눈엣가시 취급했지만 동시에 분명 사랑했고 존경했고 어쩌면 아르카나에 대한 광신도 처음에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에 헌신하면 엄마가 날 봐줄지도 모른다' 는 어리고 유치한 마음이었을지도.
12장에서 재건이 돈 강 유역에 겨울을 유예시키고 홀로도모르를 연상케하는 대기근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게 아르카나의 권능이라고 묘사되면서 마치 시간 관련 능력이라는 인상을 풍겼는데 정작 13장에서 밝혀진 아르카나의 능력은 '영성의 통로를 관장한다' 였던 거 굉장히 신경 쓰이네. 립구에선 시간의 흐름도 영성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 영성의 흐름을 틀어막으면 시간도 틀어막을 수 있다고??
12장에선 메렐-갈리나 부인의 대화가 주로 복선으로 꼽히지만 버틴-이반의 대화도 당시 참 의미심장하다 싶었는데(지금 보면 각자 리버스되는 편&뒤쫓아가는 편의 조합이기까지), 그 점에서 13장은 그 때 보류되었던 버틴의 대답이 밝혀지는 편이기도 했군. 그리고 이는 개인적으로 13장에서 가장 고평가하는 부분이다. 꼭 닮은 남임을 알면서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쓸쓸한 심정, 립구 세계관의 특수성에 기인한 진귀한 경험을 작중의 버틴과 작외의 플레이어가 완전히 싱크로하여 메타적으로 체험한다. 누가 뭐래도 주년 이벤트에 어울린다.
13장에서 재단, 즉 팍스 하우스의 수장이 플라톤 철학에서 유래한 '철인왕' 이라는 건 조금 놀랐지만 서양 철학을 중히 쓰는 본작에서 그 시조급인 플라톤 모티브의 인물(립구니까 아예 플라톤 본인일 수도 있고)이 큰 의미를 차지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군. 돌이켜보면 립구의 뼈대가 플라톤주의 내지는 신플라톤주의란 복선도 많았다. 예컨대 3장 초반에서 인간의 역사와 마도학자의 역사가 서로 다르다는 암시와 함께 등장하는 책의 이름이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칼데아 신탁Chaldean Oracles' 이라거나.
그러고보니 옛날 립구가 갓 런칭했을 때 소네트가 재판 증인으로 출석하는 장면에서 특별 검사의 CG를 보며 이 유별나게 창백한 피부는 채색 실수인지 아니면 대리석 조각상의 의식각성자이기라도 한 건지 그렇다면 이름 없는 엑스트라에게 왜 구태여 특이한 설정을 부여한 건지 의문이었는데 3주년에서 '가장 순결한 피조물' 이라는 설정이 등장해 '아아~' 가 됐네.
이졸데가 번영 뒤에 위태로움과 파멸을 숨긴 시대인 벨 에포크를 상징하고 화려하면서도 불공평한 도시 빈을 상징하는 인물임을 감안할 때 카카니아가 이졸데의 치유에 실패하는 건 단순히 카카니아-이졸데의 개인적 관계 파탄을 넘어 '시대와 도시를 치유한다' 는 카카니아의 꿈이 실패했음을 이졸데의 형상을 빌려 구체화하고 있어서 좋지.
센티넬의 스킬 스크립트를 볼 때마다 이게 가챠 게임만 아니었으면 블루포크는 센티넬을 폭풍우에 담그는 것도 아니고 아예 죽여버릴 것 같아서 웃기네. 아니 뭐 나도 센티넬은 마침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판단했을 때 평온한 마음으로 자살하는 게 캐릭터적으로 가장 일관성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이해는 된다만, 정말 그런 결말을 낼 수는 없으니까 대신 이런 스크립트로 최대한 타협하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