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면 벗으면 되지』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40도를 넘었던 주간에 대구에 내려갔고, 피정 중에 머리 식힐 겸 살짝 읽은 책. 귀여운 그림만큼 내용도 귀여웠다. 이 이야기가 간단하게 살라고, 대충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떤 장면에선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하고 외치고 싶은 '꼰대'가 되기도 했지만...날 어렵게 하는 게 간혹 나 자신임을 깨달을 수만 있어도 어른이야. 덥다고 내 옷을 후다닥 벗어버리진 못한다 해도누군가에게 더울 땐 옷을 벗어도 좋다고 말해줄 줄 아는 어른.
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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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왔을까. 댓글, 멘션 반말로 하지 않기 운동본부 본부장. 맞팔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할게요. 그래도 제가 궁금하시면 차라리 저를 외면하세요. 그렇다면 전 오타대마왕 http://singthelord.tistory.com/m
해냈어! 장세련 글. 신소담 그림. 단비어린이. 무더위 속 피정을 마친 마지막날 밤, 짐을 대충 싸두고 엎드려서 읽은, 한쪽 다리가 짧게 태어난 고양이 이야기이다. 아롱이에 대해 말하는 몇몇 어른들의 언어가 거슬렸는데, 정작 아롱이는 그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목소리를 선택했다. 피정 마지막 날, 아롱이 덕에나 역시 어떤 목소리를 선택해야 할지도 생각했다.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루카 5,37-38) #dailyreading 사람이 아프든 배가 고프든 자신들이 지켜온 율법만 곧이곧대로 고집하고 타인을 단죄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세월이 흘러 헌 부대가 되는 게 아니라 예수를 거부하고 내뜻을 고집할 때 나는 헌 부대가 되고 헌 옷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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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5,1-11 그분은 ‘떠나지 않음’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죄인이어서 제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알았기에 제자가 될 수 있었다.죄든 실수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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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 4,43) #dailyreading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아셨다. 주님, 남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과 내가 해야할 일을 구별할 줄 알게 하소서.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루카 4,34) #dailyreading 안다고 잘 사는 건 아니지. 이런 앎이야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앎. 내 앎이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이 작은 꽃화분이 옆 덩굴 식물/이름 모름ㅎ-이 잘 뻗어가도록 자신을 내어주고 있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23) #dailyreading 하느님의 일은 ‘모두를 위한 구원’이고 사람의 일은 ‘나의 이익’. 이 말씀을 종교의 이득이나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포기하라고 가르치면 …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마르 6,26-27) #dailyreading 불의를 저지르는 일이 부끄러워야 하는데, 자존심 한 번 내려놓는 일이 더 부끄러웠던 헤로데. 부끄러워야 할 때를 알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게 하소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태 25,3) #dailyreading 실천 없는 기도 침묵 없는 조배 사랑 없는 도움 존중 없는 연대 들음 없는 대화 희생 없는 봉사 하느님 없는 신앙... 기름 없는 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부서지는 아이들 저자가 너무 많이 간다 싶은 부분도 많았지만, 논조 자체가 과하다기보다는 과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점점 더 과해지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내용이라 이해하면 수긍이 간다, 때론 격하게 동감하기도 하고. 미국이 우리나라와 좀 다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도 점점 '그렇게' 되어 가기에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분들은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다.사실, 발췌글 정도만 봐도 좋겠다. - singthelord.tistory.com/m/3604
부서지는 아이들
애비게일 슈라이어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선생님도 아니고 교육 전문가도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소임을 하게 되었고, 수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찝찝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녀이다 보니 거의 대부분은 무례하게 하지 않으시지만 자녀들에 대한 양육자들의 태도가 자꾸 속으로 질문을 삼키게 했다. 짓궂은 정도를 넘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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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마태 24,45) #dailyreading 너무 많은 걸 바라시는 게 아닌데 때론 너무 많은 걸 하려는 데서, 때론 많지 않다고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문제가 생긴다. 결국 서로 잘 지내라는 말씀인데...(얘들 이름은 애지중지) 서로 애지중지하자.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마태 23,27) whitedwashed. 아무리 겉을 하얗게 씻어낸들 감추어진 뼈들과 온갖 더러운 것들은 씻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쌓인다. 내 혀에 맞아 부러진 수많은 뼈들("매에 맞으면 자국이 남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는 말씀(집회 28,17))과 은근슬쩍 감추었던 것들이 그대로 쌓인, 회칠한 무덤이 되지 않도록 겉으로만 멀쩡하지 않도록.
‘스벅 가야지’ 선창한 배재고 선수 2명, 야구 그만뒀다 배재고는 이후 학생생활위원회를 열어 구호를 선창한 학생 2명에게 중징계를, 이를 따라 한 학생 10명에게 경징계를 내렸다. 이후 선창 학생 2명은 야구부 활동 중단 의사를 학교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등록 2026-08-25 15:23
‘스벅 가야지’ 선창한 배재고 선수 2명, 야구 그만뒀다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등의 구호를 외쳐 5·18 민주화운동 비하 논란이 일었던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 중 2명이 선수 생활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2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당시 지역 비하성 구호를 선창한 배재고 학생 2명은 최근 학교 측에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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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마 태 23,26) #dailyreading 덧붙일 말이,없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내게 하신 말씀으로 듣고 하루를 살자.
열매와 은사 토마스 키팅 지음. 차덕희 옮김. 가톨릭출판사. 성령에 관해 정리를 좀 해두고도 싶었고, 그분과 좀더 진실하고 내밀한 친교를 쌓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키팅 신부님은 내가 centering prayer를 수련하는 것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시니 무한 신뢰가 가능한 분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묵상해가며 도달한 곳에는 그분의 사랑과 내 편에서의 이끌림이 있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9) #dailyreading 새 멤버가 오니 식탁에서의 이야기 주제도 달라졌다. 거쳐온 곳 이 겹치면 반가운 이야기도 많고,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가 매고 푼 것들. 그곳이 어디든, 내가 하고자 하는 하늘에서 살듯 살아야 하는 법.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 23,11-12) #dailyreading 소임 이동의 계절. 누군가의 자리가 다른 이로 채워지면, 아마 대부분은 이 구절을 떠올려볼 것이다. 새 자리에서 새 결심을 다지고, 새 사람을 맞은 이들도 그간 흐려졌던 마음을 다잡는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태 22.36) #dailvreading 때론 대답보다 질문에 답이 있다. 바리사이들의 이 질문은 궁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다. 시험해서 곤란하게 하고 싶은 이들에게 '사랑'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예수님의 대답. 받는 것보다 내놓는 것이 나를 더 잘 설명한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마태 22,11) #dailyreading 모두가 갑자기 불려왔는데 모두가 혼인 예복을 갖추어 입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예복은 번듯한 옷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겠지. 평소에도 남을 도울 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존중할 줄도 아는, 지키고 삼가할 줄도 아는, 그런 마음 가짐 아닐까.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마태 20,1) #dailyreading 오늘은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 밭주인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찾아 나서는 모습. 하늘 나라는 이와 같다. 그저 거기서 나를 기다리지 않고 앞서 나를 찾는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마태 19,29) #dailyreading 내 이름 때문에. 이유를 알아야 삶에 생기가 돋고 평화도 온다. 얻기 위한 봉사였으면 평화롭기 어렵고, 인정 받기 위한 나눔이었다면 분노하기도 쉽다. 동기를 알아야 '동기의 정화'도 시작할 수 있다. 내 삶은 하느님 때문임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마태 19,16) #dailyreading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스스로 생각한 젊은이는 결국 마지막 관문인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을 하지 못한 채 슬픈 마음으로 돌아섰다. 묻지 않았으면 정말 몰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물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며 하루를 또 살아야겠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마태 15,24) #dailyreading 이 말씀을 점점 더 진실이 되었다. 야곱이 하느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과 축복을 받았듯이,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 불렀듯이,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을 놓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여인의 딸을 낫게 하셨다. 인간이 그어 놓은 선을 예수님께서는 지워나가신다.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루카 1,39-40) #dailyreading 복음을 읽는데, 예전 묵상 때의 나의 기도가 생각났다. 나의 고달픔을 안고 엘리사벳의 집으로 길을 떠났던 성모님처럼 나도 오늘 나의 길을 힘내서 걸어가야겠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마태 19,3) #dailyreading 질문부터 틀렸다. 아니 투명하다고 해야할까. 여기저기서(트이타에서도)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이 이미 답일 때가 많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며 사는가 돌아본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마태 18,21) #dailyreading 이렇게 기도할 시간에 “저 혼자서는 힘이 부족하오니,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20) #dailyreading 예수님 이름 없이 모이면 단합이 아니라 담합. 예수님 이름이 아니더라도 선의, 정의…에도 함께 해주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