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세머보다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더 기본인 것 같다.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편안한데 비해 에셈 커뮤니티에서는 불편해. 아마도 헤테로가 섞여있어서 그런가봐. 그런 점에서 아마 나는 퀴어라는 정체성이 더 근본적인가봐.
십수년간 고민하고 몇시간의 대화 끝에 내린 결론: 나를 더이상 방치하고 학대하지 말자. 그래야 더 큰 자비와 인을 남에게 베풀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감정이 상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를 예로써 세워야 수기치인을 하고 남을 위한 단호한 자비를 베풀 수 있다.
결국 산다는 건 내면의 가장 깊은곳에 있는 근원적인 허무를 무엇으로 덮으며 시간을 보내느냐의 문제다. 허무를 덮은 층의 면적과 깊이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평생 양보하고 배려해주면서 살았더니 게이색기들 코만 높아져서 내가 시발 이제 절대 양보 안하고 밀어붙인다 개새끼들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상처에 후시딘을 바르면 낫지만 깊은 상처에는 후시딘이 소용 없다고. 내 상처는 너무 깊고 커서 약으로는 쉽게 낫지 않을 거라고.
파스타 먹고 힘내서 끝까지 살거야 악착같이 살아남을거야 강한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거랬어
그래 시발 짐승새끼들 때문에 내가 죽을 필요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