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트

@baemh.bsky.social

소설가 움직이는 세계와 인간의 이야기를 씀 집으로 가지 않고 세계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주인공의 용기를 믿음 하지만 집에 가는 거 좋아함

만화나 웹툰이 정보값 줄 데 주고 비울 데 비우고 리듬감있게 배치하면 무지 잘 읽힙니다. 그게 문제임. 빨리 읽혀요. 잘 만들어서 빨리 읽히는건데, 그러면 왠지 돈아깝다고 느끼는 사람이 존재함.

사람들이 다 서울 살고 싶어하는 줄 알지만 그 외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먹고 살만한 일자리 있으면 고향에서 그냥 사는거 좋다는 사람 꽤 많음. 뭔 남방한계선 이 염병하는거 보고 진짜 눈깔 튀나오게 뒤통수 갈기고 싶더라

얼마 전에 상당히 끔찍한 말을 들었는데…… AI 일러스트를 그림알못 미적감각알못인 사장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사람이 그리면 주제부분만 잘 그리고 배경은 날리는데 AI는 촘촘꼼꼼하게 화면을 다 채우기 때문“이란다. 그니까 이 똥눈들이, ‘포커싱’이라든가 점•선•면의 배치라든가 주제를 돋보이게 하게 위한 의도적 층차두기 명도•채도의 차이두기 등을 전혀 이해 못하고 ”귀찮아서 게으름 부려서“ 배경을 대충 칠해온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거. 그걸 돈 아깝다고 생각한다는 거. 돈 줬으면 화폭을 꽉꽉 채워 받아야 뽕 뽑았다고 착각한대.

심지어 그 고증이라는 것도 엄청 편협한 범위(특정 시기 유행했던 복식) 에서, 그마저도 실제 유물에 근거가 아니라 미디어에서 재생산된 이미지의 고증이라 절로 이마를 짚게됨. 한복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고, 또 생각보다 옆나라 이웃나라와 겹치는 부분도 많아요.(당연 인접국가끼리는 원래 영향을 주고 받음

PEEP!@jeongsuri.bsky.social · yesterday

한국오타쿠들은 한국풍에 대한 기준을 좀 느슨하게 둘 필요가 있음 고증 찾다 다 놓칩니다

현대 예술이 다 그렇지만, SF도 SF만의 방식으로 질문을 중시합니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질문의 연쇄 같은 걸 특히 눈여겨 보지요.

우다영 작가의 거대한 질문도 좋아함. 윤리 감각이 변할 만큼 큰 규모의 시간을 다루는 능력도. 다작하는 작가였으면 더 좋을 텐데.

동료 입장에서 김초엽 작가는 질문을 꽤 강력하게 던지는 작가라고 느끼고 있다. 무언가를 부수는 질문들이고, 먼저 던진 질문의 다음 단계 질문을 꾸준히 찾아 들어가고, 그런 흐름이 멋지다고 생각함.

실제로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기후재난으로 죽어가고 동식물 죽어서 식량난 걱정을 하게 생겼는데 각 정부들은 AI니 전쟁이니 하는거 보면 이미 조졌다 싶음.

그저 정치 성향 차이일 뿐이면 같이 지내는 데 큰 문제가 없어야 정상인데, 요즘의 "그런" 극단적인 세계관이 가능하려면 상식이든 언어든 함께 사는 데 기본이 되는 전제 몇 가지를 무너뜨려야 해서... 자기는 절대 지지 않는 포지션에서 논쟁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과는 멀쩡한 대화가 가능하지도 않고.

작가가 누구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는 건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말 같아요. 우선 작가 자신이 자기 창작 과정을 다 알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고(다 알 필요도 없고), 남들도 들으면 다 알 것 같은 근사해 보이는 작품을 대는 경향도 있고, 드물게는 진짜로 영향 받은 작품이나 작가를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겠고. 아무튼 그때그때 의견이 달라지는 정치적 선언 같은 느낌이 되고 말지요. 계보 비슷한 걸 그리게 된다는 점에서. 그런데 이게 작가들이 꽤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팝의 몰락과 케이팝의 라이징으로 주요 시상식들이 ‘케이팝’ 부문 만드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고, 당장 돈이 없어서 시상식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져서 화제성 좋은 케이팝 가수 부르는 거야 몇년 사이에 익히 봤다. 근데 ‘아시안팝’이라는, 근본은커녕 실체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카테고리를 신설하는 데서 그래미 백인놈들의 무지막지한 인종차별력에 그저 놀라울 뿐. 아시아인들은 그저 한뭉텅이로 대충 모아서 취급해도 된다고 보는 이 무지와 오만이 역시 grammy so white구나 싶음.

Kimmy@avecalice.bsky.social · last wk.

그래미가 아시안팝 부문 신설한다는 거 보고 역시 인종차별 오래 해 본 놈들은 행보가 다르구나 싶어짐.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연결노동"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주업무 뿐만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소통과 대화의 기술 등도 일을 잘하게 하는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업무를 정량화하거나 인공지능 등으로 자동화할 때면 항상 무시당하는 영역이라고 한다(미국 학자가 쓴 책임).

관리자로써 말하자면. 일 잘 하는 데 싸가지 없음이 성립하려면 진짜 지이이이이이이인짜아아아아아아 일을 잘하거나 지이이이이이인짜아아아아아아 재력이나 인맥이 좋거나 해야 됨. 걍 남들보다 나은 수준이면 그 정도 일 하는 사람은 또 있기 때문에 싸가지 없으면 갈아치웁니다(?) 싸가지 없는 걸 참아줄만큼 뛰어난 인재는 1N년 회사 굴리면서 본 적이 없으니께. 대체 가능하니까 의미 없음.

레미@lemi9.bsky.social · last wk.

일 잘하는데 싸가지 없음 <<< 이런 거 걍 백수 쿨찐들의 환상일 뿐이고요. ㄹㅇ로 싸가지가 없으면 동료들이 줄줄이 보이콧 하기 때문에 업무가 안 됩니다. 사회적 가면 써라 좋은 말로 할 때

김초엽 소설을 얘기하겠다는 사람들이 소설의 분위기가 다정하다든가 여성 퀴어 소수자 캐릭터가 나온다든가…그런 얘기만 계속 하고 월드빌딩에 대해서는 신기하리만치 말하지 않는 점이 줄곧 불만임.

저는 소설 창작은 잘 모르지만… 상상력, 창의력, 혹은 이런 종류의 예술적 재능과 그 결과물에 어떤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이 예술에 특수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생각 자체가 예술과 창작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굳이 다른 분야의 일을 소설 창장에 외삽해보자면, 분명 거기에도 어떤 뚜렷한 흐름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 흐름과 줄기를 따라 움직이고,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아는 지평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레드벨트@baemh.bsky.social · last wk.

창작자 여러분, "상상력의 극한까지 몰고 간 작품을 원한다"는 말에 속지 마세요. 보통 여기서의 극한은 그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의 끝이지 창작자가 할 수 있는 것의 최대한이 아닙니다... 어느 시기에 인류 전체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는 더더욱 아니고요. 물론 정말로 극한에 가까운 경우도 드물게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저쪽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 있어요.

창작자 여러분, "상상력의 극한까지 몰고 간 작품을 원한다"는 말에 속지 마세요. 보통 여기서의 극한은 그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의 끝이지 창작자가 할 수 있는 것의 최대한이 아닙니다... 어느 시기에 인류 전체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는 더더욱 아니고요. 물론 정말로 극한에 가까운 경우도 드물게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저쪽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 있어요.

무인양품 바다 소금 캔디 소다향 샀는데 먹어 보니 이거 맛있다면서 여러개 집어 먹을 물건이 아니라, 상비하고 다니다가 더운데 쓰러질것같으면 집어 삼켜야 하는 그런 캔디네요. 향이 나고 체감 짠맛5 신맛2.5 단맛2.5정도. ( 짠맛이 확실히 쏘지 않고 부드럽긴 합니다. ) 비싸지도 않고 더위에 녹는 캔디도 아니니 한봉지 사서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약간씩 나눠서 주머니에 상비하고 다니면 괜찮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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